<헤어질 결심>은 깐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영화다. 영화제 수상작은 결국 보게 된다. 대부분 영화제 수상작이 그렇듯이 이 영화도 상징직인 대사와 애매한 장면들로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결국은 사랑과 죽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낯익은 주제이기도 하고, 인간을 성찰하게 하는 가장 자극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위 포스터가 <헤어질 결심>의 거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 수갑을 찬 두 남녀. 한 명은 형사 '해준'(박해일)이고 다른 한 명은 살인 용의자 '서래'(탕웨이)다. 잠을 못 이루던 해준은 서래를 만나면서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결혼한 해준은 가족이라는 틀, 경찰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런 해준이 결혼이라는 틀에서, 경찰이라는 틀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인물이 서래다. 결혼을 넘어서 사랑하게 되고, 경찰을 넘어서 증거를 포기하게 만든 사람이 서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탈은 잠시일 뿐, 영원할 수 없었다.
또한 <헤어질 결심>에서 둘은 수갑, 즉 경찰과 용의자로서만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결혼 반지를 낀 해준의 손가락, 그 위에 살짝 두 손가락을 올려 놓은 서래.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이었고, 내 사랑은 그 때 시작했지요."라는 서래의 대사를 아주 잘 표현한 모습이다. 이렇게 연결된 두 사람. 해준은 자는지 조는지 눈을 감고 있고, 서래는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둘의 머리를 갈라놓은 밝은 빛은 현실의 규율, 아니 현실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미제 사건의 사진 자료를 자신의 방에 끝까지 남겨놓는 해준의 습성에 따라, 자신을 끝까지 찾지 못하게 하여 미제 사건으로 남고자 하는 서래의 결심은 엉뚱하고 어이 없지만 스토리상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그 사람이 결혼했다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 두나요?"라는 서래의 대사는 매우 상징적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면 깊은 바다 속으로 그것을 던져버리라는 해준의 말에서도 이런 결과는 예견되어 있었다. 이 와중에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인간과 결혼을 했냐"는 해준의 대사는 현실에 찌든 우리가 자주 떠올리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은 (해준처럼) 우리를 '근본적인' 불행 안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게 한다.
<헤어질 결심>은 틀에서 벗어난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끊임 없이 생기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매 순간에도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마음, '헤어질 결심'이다. 결국 헤어져야 하는 관계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지만 지금의 마음을, 지금의 기쁨을 버릴 수 없다. 매 순간의 기쁨과 사랑 뒤편에는 조심스럽게 <헤어질 결심>이 함께 하는 거다. 어찌 보면 의미 없는 이 순간, 상대에게 잊혀질 지금이다. 그 <헤어질 결심>이 늘 함께하는 지금의 사랑을 영원한 의미로 남기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욕망을 위해, 이 순간을 해준에게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만들려는 서래의 결심과 선택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론이자 중심 주제다.
(작가주의 짙은 영화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며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저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봤습니다. 당연히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요.)
2시간이 넘는 영화이지만, 잠시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다. 다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편집한 장면들이 다소 잡다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한국인보다는 서양인의 세계에서 더 인상적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실존'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는 우리들에겐 너무 희박하고 너무 사치스러운 <헤어질 결심>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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